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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추억을 소환하는 안주들

by Bookworm2023 2023. 5. 21.

<안주잡설>은 술과 안주의 궁합이나 맛있는 안주를 만드는 레시피를 논하는 그런 책은 아닙니다. 정진영 작가가 먹었던 30가지 안주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죠. 술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안주는 반찬쯤으로 격이 내려가는데 반해 안주가 주인공인 책.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안주들이기에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움찔거리는 침샘과 함께 추억을 떠올라요. 책을 읽으며 추억하고 싶은 기억, 잊고 싶은 기억 모두 떠올리며 '나도 그랬지'하며 피식피식 웃음을 지었어요. 

올해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기간과 술을 마실 수 없는, 어떻게든 마신다면 마실 수 있지만 불법이었던, 기간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나이가 되네요. 그래서 책 속에 나오는 안주 중에 저에게도 추억이 있는 안주들이 여럿 있어요.

첫 혼술의 쓰린 속을 달래 줬던 홍합탕, 차가워진 족발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소주와 함께 먹었고요. 대학교 앞 투다리에서 동창들과 처음 먹어본 꼬치구이, 영국 유학 중 알게 된 짜다 못해 혀가 아렸던 프로슈토와 하몽에 곁들인 위스키, 맛도 모르며 허세를 부렸던 와인과 치즈, 허름한 순댓골목 단골집 2층 다락방에 모여 먹었던 토종순대 그리고 아빠가 알려주신 과메기의 참 맛과 이상한 냄새 속 할머니의 사랑이 담겼던 삭힌 홍어까지.

한 가지를 공유하자면 제가 처음 혼술을 마신 곳은 용인 터미널 옆 포장마차였어요. 왜 혼술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부여잡고 깡소주를 2~3병 마시니 이모님이 속 버린다며 홍합탕 한 그릇은 내주셨던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찌르르 속을 타고 내리던 소주를 말씀하게 씻어냈던 홍합탕 한 숟가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었어요. 지금도 포장마차를 볼 때면 홍합탕을 파는지 메뉴판을 보며 추억을 떠올린답니다.

술을 마셔도 즐기는 편은 아니였는데, 뮤지컬을 시작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술을 먹는 횟수와 양이 자연스레 늘어나 이런저런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어요. 좋지도 않은 술을 왜 그렇게 마시겠다고 기를 썼는지, 없는 돈 탈탈 털어가며 친구들과 술부심을 부리고 나면 세상이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몰랐죠. 이내 집으로 가는 길엔 가벼워진 주머니 사정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다 비둘기의 이른 아침상을 차린 경험은 참 부끄럽고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네요.

 

이 책에서 어떤 교훈을 바라거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주를 통해 깨닳은 삶의 지혜가 있어요.

 

맛있는 안주를 만나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은 없다는 것,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면 똥된다는 것,

급할 때 일수록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

남이 맛있다고 하니까 내 취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

 

술 한잔과 안주가 주는 추억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한잔하고 싶은 욕망이 아지랑이꽃처럼 피어오르네요. 

 

추억 한 잔 하실래요?

 

🐛🐛🐛

 

독서 시작: 2023. 05. 19 (금)

독서 종료: 2023. 05. 20 (토)

제목: 안주잡설

저자: 정진영

 

@180books_1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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